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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공파의 흐름.


1,신라의 창건과 김씨

신라는 원래 삼한 (마한 진한 변한)중에서 진한에 속 하는 12개국중의

하나인 사로(斯盧)라고하는 부족국가 를 모체로 하여 창건한 나라이다

사로는 지금의 경주를 중심한 지역인데 6개의 씨족집단(서벌(徐伐)육(六)촌(村)으로

형성 되었으며 화백회의(만장일치제로 국사를 의논하던 기족회의 기관)에서

박 혁거세 를 군왕으로 모시면서 신라국이 창건되었다

 신라992년간의 역사는 (박 석 김 )삼성의 군왕으로서 통치 하였던바

박씨는  10왕에 재위는 232년간 이요

석씨는   8왕에 재위는 173년간 이며

김씨는  38왕에 재위는 587년간 으로서 최장집권이며 김씨 성으로

처음 군왕이 되신분은 신라 13대 미추왕이시고

17대 내물왕때 에 김씨왕 세습권이 생기었으며

22대 지증왕(500~514) 때 국호를 신라로 정하고 국호를 중국식으로 따서 왕이라고 하였다

 23대 법흥왕때(514~540)에는 김해김씨 선조인 수로왕이 건국한 본가야 (가락 변한 지금의

김해를 중심한 지역)를 병합하여 신라영토를 확장하였고

 29대 무열왕때 (660)에는 나당연합군 으로서 백제를 정복하여 계백과 3,000궁녀 의 전설을

 남겼으며 30대  문무왕때 668에는 고구려를 정복하여 삼국통일의 성업을 이룩하였다

 마지막 군왕이신 56대 경순왕을 고비로 하여 신라천년의 장음한 막을 내리게 됐다 (서기935년)


 

           1,대보공(大輔公) 김알지

신라국 4대 석탈해왕 9년에 금성시림(지금의 경주 계림)에서 탄생 했으며

바로 이분이 대보공(왕 다음의 직위)김알지 공이 김씨의 근원이라 하겠다

대보공의 후손 의 맥은 김으로 쓰는 39봉관 과 안동권씨 수원최씨  2봉관은

 쓰는 글자는 달리해도 같은 김알지의 후손이다

                 대보공(大輔公) 김 알지 의 봉관조 맥은

    @여기서 41봉관조는 다음과 같다.

羅州(라주) 慶州(경주) 安東(안동) 水原(수원) 順天(순천) 金寧(김녕) 義城(의성)

 江陵(강릉) 彦陽(언양) 三陟(삼척) 逐安(축안) 全州(전주) 安山(안산) 完山(완산)

咸昌(함창) 善山(선산) 光州(광주) 光山(광산) 禮安(례안) 蔚山(울산) 豊山(풍산)

 商山(상산) 延安(연안) 淸風(청풍) 樂安(락안) 扶安(부안) 扶寧(부녕) 永同(영동)

瑞興(서흥) 平海(평해) 海平(해평) 忠州(충주) 淸道(청도) 靈光(령광) 熙川(희천)

安老(안로) 原州(원주) 高靈(고령) 龍宮(용궁)   安東權(안동권) 水原崔(수원최)

                                                                      족보 대동보에서 옮김

우리나라의 성씨는 274종과 봉관조는 333종의 봉관조 중 여기서 김씨의 봉관조만114종이며

 이씨=99종 박씨=44종 최씨=42종 정씨=28종 장씨=23 종 전씨=20 종 임씨=18종 조씨=17종

오씨16종손씨도=16종 왕씨=11종... 등이며 성을 외자가 아닌 두자인복성 성씨는 공손 , 남궁,

 동방, 독고,을지,사공, 사마,서문,선우,제갈, 황보등이 있다.

         2,경순왕(敬順王) 대보공의 28세손

신라천년(992년간)56대 마지막 왕이며 장음했던 박,석,김, 왕의 통치력은경순왕으로부터 고려 태조 왕건에게 손국 하면서 신라의 막을 내린다     서기935년 [경주]


         3,김 시흥 金寧君(김녕군) (문열공)대보공35세손

군의 휘는 시흥이요 시는 문열공이라 경순왕의8세손이요 대보공의35세손 된다 공은 고려 인종때 병부시랑(지금국방부 장관)이었으며 당시 왕명을 받들어 묘청의 난을평정하셨고 명종4년에는 조위총이 반란의 3년간 횡포를 평정하는 공을 세웠다 명종6년에 졸 하시니 향년87세요 이어른이 김녕김씨의 봉관조이시다

                  

                 여기서 김녕김씨의 파는 14파...등로 나누어 맥이 흐른다

             김녕군의 김녕김씨 봉파 (金寧君 金寧金氏封派)

   1,충의공(忠毅公) 휘 문기(文起)파                2,영사공(領事公) 휘 준(遵)파

   3,진주목사공(晋州牧使公) 휘 형(硎)파          4,충정공(忠貞公) 휘 준영(俊榮)파

   5,충경공(忠敬公) 휘 경세(景世)파                6,광주유수공(廣州留守公) 휘 안도(安道)파

   7,송암공(松菴公) 휘 질(秩)파                      8,만은공(晩隱公) 휘 길상(吉祥)파

   9,대사성공(大司成公) 휘 지(智)파                10,판서공(判書公) 휘 전(銓)파

   11,도순찰사공(都巡察使公) 휘 문제(文齊)파   12,충민공(忠愍公) 휘인찬(仁贊)파

   13상서공(尙書公) 휘 문희(文熙)파               14,시랑공(侍郞公) 휘 문백(文伯)파


      4,충의공(忠毅公) 김문기 대보공44세손

공의 자는 여공 호는 백촌으로서 김녕군의 9세손이며 기묘년 충북 옥천군 백지리에서 탄생하셨다(처음이름은 효기)

조선의 (이씨 태조=이성계 초대~순종=이척27대 말왕)  세종대왕8년 문과에 급제 로부터 이조판서 까지 여러 官爵(관작)을 거치면서 많은 엎적을 남겨셨다

제 4 대 - 세 종(世 宗) . 휘 - 도  (1397 ~ 1450 )

제 5 대 - 문 종(文 宗) . 휘 - 향   (1414 ~ 1452 )

제 6 대 - 단 종(端 宗) . 휘 - 홍위  (1441 ~ 1457 )

  백촌 선생께서는 위 세분의 대왕을 모셨고 수양대군 세조의 계유정난(구테타) 후 단종복위 운동의 실패로 (김질의 밀고) 형장에서 살 껍질을 벗기는 고문을 당하면서 입 잘 여는 신들에게나 물어 보라 하면서 수양을 꾸짖으면서 단종에게 충의를  죽음으로 향년56세에 순절 하셨으니 아들 현석(여병제 현감동)도 부친 따라 함께 순절하시었다

이때 형장에서 여러 충신들도 (官爵(관작)70명 )순절하셨다

 

당시 3종질 영돈령 준을 불러 흥양(지금의 고흥)으로 피신케 함으로서 김녕군의 선대의 얼을 보존께 하였으니 충과 효를 한 몸에 지닌 화신이 된것이다 .

 

그 후 후손들이 숙종때 伸寃(신원)을 상소하였으니 영조때 쾌신복관작하여

정조때 대제학의 증서를 받으시고 사시를 충의

 

사군진절왈충=자기몸도 위태로운데 임금을 위함의 충

강이긍단왈의=강력한 결단력과 의 의

 

고종 경오년에 명정유허비를 경북 의성군 대사리에 경의당에 모셨다

이곳이  덕양서원이며 바로 이분이 충의공 파의 맥이라 한다

 

                      충의공파의 항렬도(行列圖)

                                                                   

二三세
 二四세
 二五세
 二六세
 二七세
 二八세
 二九세
 三○세
 三一세
 三二세
 
溶(용)○
 ○權(권)
 炯(형)○
 ○圭(규)
 鎭(진)○
 ○淵(연)
 楨(정)○
 ○燁(엽)
 玟(민)○
 ○鎬(호)
 
汶(문)○
 ○模○모
 炳(병)○
 ○基(기)
 鍾(종)○
 ○洙(수)
 東(동)○
 ○燮(섭)
 珏(각)○
 ○鉉(현)
 
洸(광)○
 ○柱(주)
 炫(현)○
 ○奎(규)
 鍊(연)○
 ○泰(태)
 秉(병)○
 ○烈(열)
 址(지)○
 ○鍵(건)
 
三三세
 三四세
 三五세
 三六세
 三七세
 三八세
 三九세
 四○세
 四一세
 四二세
 
泳(영)○
 ○根(근)
 燦(찬)○
 ○坤(곤)
 種(종)○
 ○洛(락)
 來(래)○
 ○炅(경)
 
 
 
浚(준)○
 ○柄(병)
 ○煥(환)
 ○埈(준)
 鏞(용)○
 ○漢(한)
 柄(병)○
 
 
 
 
浩(호)○
 ○相(상)
 熙(희)○
 ○均(균)
 鈺(옥)○
 ○永(영)
 
 
 
 
 

                                                                                                                


덧붙이면

김녕 김의 항렬자는 한자  金(금)水(수)木(목)火(화)土(토) 변의 글자인  순서로 나열이 반복하면서 향렬도가 만들어 졌으며  한 대의 이름자가 앞이면 다음 대에는 뒤 자가 항렬자 가 된다. 김녕김씨의 항렬 나열법은 오행상생법을 쓰며 다른 성씨의분들도 각문중의 향렬법이 여러 항렬나렬법이 있는데 주로 오행 상생법 *(金 水 木 火 土) 을쓴다

위 항렬도를 보고 이름자를 넣어보면 쉽게 이해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말 옆부터 족보가 성행 되어 왔다

그러므로 위 항렬표가 23대 때 부터 체계적으로 시작되었으며  長孫(장손)에 가까을수록 항렬이 낮으며 支孫(지손)은 항렬이 높다

그래서 장손은 세대 교체가 빠르니 뱃속에 할아버지란 말이 된다

항렬(돌림자)는 4,6,8촌은 같은 돌림자를 쓰며 이름자는  선조의 휘(이름)를 같이 쓰는것을 피 함을 통례로 한다

 

대소간 또는 종반간 은 10촌내의 유대관계이다.

- 남의 성(본관)씨를 부를때는 씨자를 붙혀 말하며 나의 관명을 말할 때는 김녕김가 충의공파 손입니다 라고 말 한다 .

2011/10/17 13:48 2011/10/1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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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7 13:46 2011/10/1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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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7 13:44 2011/10/1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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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흥(金時興)
김녕김씨(金寧金氏)의 관조,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35세손으로 경순대왕 8세손이다. 고려 인종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翰林院)을 거쳐 병부시랑 동북면 병마사(兵部侍郞東北面兵馬使), 묘청(妙淸), 조광(趙匡) 등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위사공신(衛社功臣), 정당문학광록대부 평장사(政堂文學光祿大夫平章事)에 이르렀다.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졌고,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김향(金珦)
김녕군 시흥(時興)려 인종조에 이자겸(李資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위사공신(衛社功臣)이 되었다. 시호는 원정(元靖)이다.

김극세(金克稅)
원정공(元靖公) 향(珦)의 아들로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郞)을 거쳐 대광첨의찬성사(大匡僉議贊成事)를 역임하였다.

김중원(金重源)
호는 미국(楣谷), 극세의 아들이다. 경상도 안렴사(慶尙道按廉使), 형부시랑, 형부상서 등을 역임하였다.

김중보(金重輔)
극주의 아들로 정승성 정승(政丞省政丞)을 지냈으며 시회는 문간(文簡)이다.

김귀갑(金貴甲)
중원(重源)의 아들이며 문과에 급제하였고, 밀직사사(密直司使)를 역임하였다.

김현(金峴)
중원(重源)의 아들이며 중정대부 직문하(中正大夫直門下)를 지냈고,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김문제(金文齊)
중후(重後)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였고, 전라도 출척사(全羅道黜陟使) 및 도순찰사(都巡察使)를 지냈고 감사(監司)를 역임하였다.

김정병(金廷丙)
호는 회은(晦隱), 귀갑(貴甲)의 아들이다.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 병부상서(兵部尙書) 등을 역임하였고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김정신(金挺申)
귀갑(貴甲)의 아들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정순대부 전공사판서(正順大夫典工事判書)를 지내고 분성군(盆城君)에 봉군되었다.

김광저(金光儲)
자는 화중(華中), 호는 농암(壟岩)이다. 현(峴)의 아들로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역임하였다.

김윤달(金潤達)
호는 호정(浩亭), 정병(挺丙)의 아들이다. 한림학사를 거쳐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김질(金秩)
호는 송암(松菴), 정신(挺申)의 아들이다. 고려가 망하자 도고산(道高山)에 낙향, 태조 이성계가 옛정을 생각하고, 예조판서(禮曹判書)로 임명하여 불렀으나 끝내 거절하고 나가지 않았다.

김순(金順)
자는 창여(昌汝), 호는 퇴휴당(退休堂) 광저(光儲)의 아들이다.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역임하고 영의정(領議政)에 증직되었다.

김천익(金天益)
일성(鎰成)의 아들로 문과급제하여 추밀원 좌승지(樞密院左承旨), 상장군(上將軍),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였다. 개녕군(開寧君)에 봉군되었다.

김익생(金益生)
호는 성재(省齋), 질(秩)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1405(태종5)년에 왕명으로 효자정려가 내렸다. 남포진병마절제사(南浦鎭兵馬節制使)를 거쳐 명나라 황태자 책봉에 진하사(進賀使), 경상병마절제사(慶尙兵馬節制使), 한성부윤(漢城府尹),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를 지냈고, 예조판서에 증직되었다.

김관(金觀)
호는 수헌(睡軒), 호판공(戶判公) 순(順)의 장자이다.. 충의공(忠毅公) 문기(文起)의 아버지이다.
호분위사좌령사직(虎賁衛司左領司直)을 역임하였으며, 후에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증직 받았고 다시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에 추증되었다.

김지(金智)
호판공(戶判公) 순(順)의 아들로 세종 때 벼슬길에 나가 통훈대부 군자감정(軍資監正)과 가선대부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을 역임하였다.
1456년 단종사화(端宗士禍) 때 장질(長姪)인 충의공(忠毅公) 문기와 현석(玄錫) 부자가 순절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 산수와 풍월을 벗삼아 농사짓고 낚시로 일생을 마쳤으니 사람들은 공의 절의를 칭송하였다.

김존일(金存一)
이조판서 천익(天益)의 아들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역임하였다.

김문기(金文起)
자는 여공(汝恭), 호는 백촌(白村). 1399(정종 1)년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沃川郡伊院面白池里)에서 호조판서를 역임한 퇴휴당(退休堂) 순(順)의 손자이며 증영의정 관(觀)의 아들로 태어났다.

공은 1426(세종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 기사관으로 있으면서 세종 13년 태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예문관 검열 및 사간원 좌헌납을 거쳐 경상도 아사(亞使)와 안동부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함길도 관찰사로 나갔다. 공은 변경의 각 지역에 둔전(屯田)을 설치하여 여진족의 침략에 대비하는 장기대책을 건의하여 실행에 옮겨 많은 치적을 남겼다. 이 때 문종은 임종(臨終)을 맞아 김종서(金宗瑞)ㆍ민신(閔伸)ㆍ조극관(趙克寬)ㆍ김문기(金文起) 등에게 나이 어린 세자의 장래를 보호해 줄 것을 부탁한다. 이 때 이 명을 받은 고명대신(顧命大臣)들은 조정의 중의(衆意)를 능히 이끌 수 있는 신망과 성실하고 강직한 인품이 있어야 했던 것은 물론이다. 공은 인품과 조정에서의 능력이 당대에 널리 인정받아 정평이 나 있었기에 고명을 받드는 중임을 맡게 된 것이다.

공은 1453(단종 1)년 형조참판에 제수되었고 천추사(千秋使)로 중국에 다녀왔다. 이때는 이미 모든 권력이 수양대군으로 넘어갔으나 이징옥(李澄玉)이 난을 일으키자 진략이 뛰어난 공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여 토평사로 함길도병마도절제사(咸吉道兵馬都節制使)에 임명되어 난을 마무리 짓고 북변의 소요를 완전히 평정하였다.
1455년 공조판서 겸 도진무로 있으면서 수양대군의 찬위(簒位)에 의분을 느끼고 박팽년(朴彭年)ㆍ성삼문(成三問)과 더불어 결의하고 단종복위를 위한 비밀결사를 구체적으로 지휘하였다. 이것이 발각되어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공은 자신 이외에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았으니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과정에서 중요한 임무인 병력 동원을 맡았던 공이 심약했더라면 수 없는 사람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동지들을 보호하려는 의기를 말할 것도 없고 비록 성공은 하지 못했으나 선왕의 고명을 지키기 위한 충절은 가히 하늘에 사무쳤으니 공은 끝내 사지를 찢기는 차열형(車裂刑)을 받아 순절하였다.

훗날 절의의 상징으로 일컬어졌던 사육신(死六臣)에 공이 제외되었던 것은 기록의 고찰에 소홀한 면도 있었다고 보겠다. 무엇보다 《조선실록》세조 2년 6월 병오일 조에 단종복위운동을 역률로 몰아 사형한 주모자 육신(六臣)의 이름 중에 뚜렷이 공의 이름이 올라 있음을 볼 때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또한 공을 평가할 때 단순히 충절의 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지극한 효성은 말할 것도 없고 학문의 깊이에서나 인품에서도 만인의 우러름을 받았던 점이다. 그와 같은 기록을 여러 가지로 찾아볼 수 있으나 당대의 대문호이자 석학이었던 서거정(徐居正)은 역률에 의해 참살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공의 이름 뒤에는 ‘선생’이란 호칭을 사용하였고, 여러 사우(祠宇)에 모셔졌던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공이 충절의 정신으로 몸을 바친 지 275년이 지난 뒤인 1731(영조 7)년에야 복관작되고 충의(忠毅)로 시호를 받았다. 1977년 9월 22일에는 정사(正史)인 《조선왕조실록》 및 《숙모지(肅慕誌)》 등 고증에 의하여 국사편찬위원회가 ‘세조 때 이미 가려진 사육신(死六臣)’임을 확인하여 사단(史斷)하였다. 이에 따라 서울시에서는 노량진 사육신공원 사육신묘역에 가묘를 봉분하고 의절사(義節祠)에 위패를 봉안하였으며 충효사상의 실천도장으로 성역화하였다.
김효온(金孝溫)
자는 백원(伯源), 지(智)의 아들이다. 사마시에 합격하여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역임하고,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김효신(金孝信)
지(智)의 아들, 진사에 장원으로 합격하였고, 이조참판(吏曹參判), 예조판서(禮曹判書)를 역임하였다.

김준(金遵)
자는 응원(應遠)이며, 호는 만지당(晩池堂)이며 운의 아들이다. 일찍이 문숙공 안숭선(安崇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문숙공의 사위가 되었다.
세종 때 병조판서를 거쳐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돈녕부영사(敦寧府領事)에 이르렀다.
장인 안숭선이 고흥으로 도임(到任)할 때 따라가서 지금의 과역면 가산리에 정주하고 못을 파 연꽃을 심어 고기를 기르며 호를 만지당이라 하였다.

김현석(金玄錫)
호는 여병재(如甁齋)로 아버지는 충의공(忠毅公) 문기(文起)이다.
생원시험에 합격하고 거창현감(居昌縣監)과 영월군수(寧越郡守)를 지냈는데 단종사화(端宗士禍) 때 아버지와 같이 순절하였다. 천성(天性)이 너그럽고 어질었으며 정직하였다. 항상 군민(郡民)들을 사랑하고 청백하였다. 거창(居昌)에 송덕비, 영월에 청덕비(淸德碑)가 세워졌다.

김충주(金忠柱)
호는 탄옹(炭翁), 문기의 손자로 단종사화로 형제들과 예속(隸屬)되어 가다가 마하산(麻霞山)에 숨어 살며 숯을 구워 연명하였다. 단종이 계신 영월쪽을 바라보면 바위에서 울었다 하여 망월암(望越岩)이 있고, 눈물을 소나무에 매양 뿌려 소나무가 말라죽어 고송정(古松亭)이라 하였다. 고종 7년 효자정려가 내려졌으니 조부 충의공부터 5대가 왕명으로 정려가 내려 오정각(五旌閣)이라 부른다.

김구룡(金九龍)
자는 회운(會雲), 호는 봉계(鳳溪)로 영돈녕부사를 지낸 준(遵)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사헌부지평을 지낸 원경(元慶)이다. 일찍이 문과에 급제 이조정랑, 자헌대부행병참판(資憲大夫行兵參判)을 역임하였다.

김준영(金俊榮)
자는 태진(泰晋), 호는 동악(東岳), 돈녕부지사 분산군(盆山君) 석숭(錫崇)의 아들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62세의 고령인데도 선조가 의주로 피난할 때 임금의 어가를 시위하여 무사히 피난시켰으며, 다시 한양으로 환도할 때도 역시 어가를 끝까지 지성으로 시위하여 무사히 환도하였다. 난이 평정된 뒤 공의 공적을 높이 찬양하여 호종공신(扈從功臣)이 되고 대광보국숭록대부분성군(大匡輔國崇祿大夫盆城君)에 봉해졌다. 그 후 숙종은 충신정려와 충정(忠貞)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부조묘에 모시라는 은전을 내렸다.

김영년(金永年)
자는 경로(敬老), 호는 겁암(怯岩)이며 명지(明之)의 아들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호벌치(胡伐峙)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면암 최익현(崔益鉉)이 찬(撰)한 《회맹록호남절의록(會盟錄湖南節義錄)》에 기록되어 있다.

김복룡(金福龍)
유광(有光)의 아들이다. 선조 때에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역임하고 분릉군(盆陵君)에 봉해졌다.

김경의(金敬義)
호는 매헌(梅軒), 인선의 아들이다. 무과에 합격하여 해남현감을 거쳐 형조참판, 훈련원지훈련원사(訓練院知訓鍊院事),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김응수(金應壽)
자는 남로(南老), 분릉군 김복룡(金福龍)의 아들이다. 임란 때 선조가 의주로 피난할 때 어가를 시위하였다.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 충좌위 부호군(忠佐衛副護軍) 등을 역임하였다.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삼등에 녹훈되었고, 자헌대부 한성판윤에 증직되었으며 분성군(盆城君)에 봉해졌다. 1605년에 승록대부 의정부 영의정(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에 복증(復贈)되었다.

김유부(金有富)
호는 어초와(魚樵窩),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낸 윤원(允元)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어머니를 업고 팔공산(八公山), 밀양 등지에서 전공을 세워 선무이등원종공신(宣武二等原從功臣)이 되고 사후 좌승지겸경연참찬관(左承旨兼慶筵參贊官)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효(忠孝)이다.

김정구(金鼎九)
호는 치옹(痴翁)이며 병조참판 계원의 아들이다. 충좌위사정(忠佐衛司正)을 지내고 공조참판에 증직되었다.

김경세(金景世)
자는 현보(賢甫), 호는 계은(溪隱)이며 귀중(貴中)의 아들이다. 무과에 합격하여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를 지냈고, 1636(인조 14)년 2월 청나라가 침입하여 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니 공주(公州)로 가서 청군과 여러 번 싸워 전공을 세웠으나 광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순조는 공의 처와 장자를 칭찬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 주었다.

시림영원 분성여예 가풍세덕 부충부열(始林靈源 盆城餘裔 家風世德 夫忠婦烈 : 성스러운 시림에서 나신 분을 근원하여 분성군 후예이라. 가풍은 대대로 덕을 쌓으니 지아비는 충신이요, 아내는 열녀일세)

순조 때 충신정려의 왕명이 내렸고, 통정대부 좌부승지겸 경연참찬관 규장각직제학(通政大夫佐副承旨兼經筵參贊官奎章閣直提學)을 증직받았으며 상산군(常山君)에 붕군되고, 다시 자헌대부 병조판서겸 오위도충부도총관에 추증되고, 충경(忠敬)의 시호를 받았다.

김흔(金欣)
자는 덕경(德卿), 호는 금은(錦隱)으로 수동(秀棟)의 아들이다. 무과에 합격 충무위부사직(忠武衛副司直)에 오르고 병자호란에 큰 공을 세우고 전사하였다. 병조판서에 증직하였고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김몽상(金夢祥)
아버지는 분성군 응수(應壽)이다. 임란 때 선조 임금의 의주 피난길을 시위하여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오르고 분흥군(盆興君)에 봉해졌다.

김언공(金彦恭)
자는 효즉(孝則), 호는 묵재(?齋) 또는 묵헌(?軒)으로 아버지는 제용감첨정 상걸(商傑)이다. 어려서부터 경서와 시에 능통하였고 23세에 향시에 으뜸으로 뽑혀 뒤에 순천부사(順天府使)에 올랐으며, 무과에 합격한 후 아버님의 삼년상을 마친 다음 판관 벼슬에 올랐다.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출정하여 공을 세워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고 당상관(堂上官)에 이르렀다.

김귀희(金貴希)
자는 희서(希瑞), 호는 노곡(魯谷)으로 덕해(德海)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효동으로 불렸으며 커서는 완력과 담력이 세고, 지략이 뛰어나 1591년 장사군관(壯士軍官)에 뽑혔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좌도병마절도사 이각(李珏)과 순찰사 김수의 막료로 왜적과 싸웠고, 고향에 돌아와 의병에 가담하여 영천성(永川城) 수복에 공을 세웠다. 그 뒤 경상좌도병마절도사 박진(朴晋)의 전부총장(前部摠將)이 되어 경주의 적을 추격하여 계연에서 대파하였다.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가 되었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이등에 올랐다. 공의 실기(實記)인 《노곡실기》에 〈용사일기(龍蛇日記)〉가 전한다.

김세좌(金世佐)
형조판서를 지내고 분계군(盆溪君)에 봉해졌다.

김석산(金碩山)
자는 성관(聖寬), 호는 잠헌(箴軒), 변란을 평정하고 벼슬이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임해군(臨海君)에 봉군되었다.

김치규(金致奎)
초명은 치범(致範), 자는 여홍(汝弘)으로 익보(益寶)의 아들이다.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을 역임하였고 1849(헌종 15)년에 가락국의 김수로왕 후손을 선김해(先金海), 대보공 김알지를 시조로 하는 신라의 경순대왕 후손을 후김해(後金海)로 불러 왔기에 혼돈으로 여러 가지 지장을 초래함에 경순대왕 계열인 김녕군(金寧君) 시흥(時興)의 후손은 관향을 김녕(金寧)으로 갖게 해달라고 예조에 경상도 유학(儒學)들과 앞장서 탄원서를 냄으로 본관을 김녕김씨로 쓰게 되었다.

김치일(金致一)
자는 관여(寬汝), 호는 경은(耕隱)으로 익보의 아들이다. 동지중추부사겸 오위장을 역임하였고 효행이 뛰어나 《품천지(品川誌)》와 《금릉군지》에 기록되었다.

김진행(金鎭行)
자는 윤서(允瑞), 광옥(光玉)의 아들이다.
효행이 뛰어나 1893(고종 30)년 효자정려의 왕명을 받았고, 증조봉대부 동몽교관(贈朝奉大夫童蒙敎官)이 되었다. 한국씨족통보 《만성보(萬姓譜)》에 김녕김씨로써는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김용식(金溶軾)
고종 때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역임하였다.

김기명(金沂明)
자는 성오(聲五), 호는 화계(華溪)로 규상(奎相)의 아들이다.
1859년 무과에 합격하여 1866년 훈련원도감(訓練院都監)으로 있을 때, 강화도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 지휘관의 목을 베어 바치는 큰 공을 세우고 승리하니 고종은 영장(營將)으로 승진시키고 공의 이력을 어병(御屛)에 제명(題名)하고 웅천현감(雄川縣監)에 제수하였다. 1863년 어전무술대회(御前武術大會)에서 이름을 떨쳐 강화도중군(江華島中軍)이 되었으며 다대진수군절제사(多大津水軍節制使)를 역임하였다.

김도현(金道鉉)
호는 벽산, 성하(性河)의 아들이다. 한말 의병장으로 영해대진(領海大津) 앞바다에서 순절하였다.

김근배(金根培)
자는 광원(光元), 아버지는 현교(顯敎)이다.
겨우 7살 때 백재(柏齋) 김상호(金尙鎬)의 문하에 나아가 수업하였고, 총명하여 일찍이 문장이 뛰어나 여러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20세에 의병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1908년 삭발령이 내리자 탄식하며 이르기를 “부모님의 유체를 훼상하고 선왕의 법복을 바꾸어 입은 것은 야만인의 풍속이라. 나는 차마 못하겠다.”하며 자취를 감추기도 했지만 망국을 슬펴하다 자결하였다.

 
2011/10/17 13:42 2011/10/1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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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군 능가사 전경

능가사(楞伽寺)는 행정구역상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 371-1로 점암면 성기리 팔영산(八影山) 아래에 위치한 유서 있는 사찰이다. 경내에는 위엄을 느낄 수 있는 사천왕상과 범종이 있어 유서 깊음을 증명한다.

능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신라 때인 416년(눌지왕 원년)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보현사(普賢寺)라 했다고 하지만 지리적으로 보아 아도화상이 과연 창건자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탄 뒤 1644년(인조 22)에 벽천(碧川)이 중창하고 능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뒤 1768년(영조 44)과 1863년(철종 14)에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서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한 능가사대웅전(보물 1307)과 천왕문(天王門), 응진전, 요사채 등이 있다.

출처:http://www.koreatemple.net/korea_temple/traditional_temple/history/view.asp?temple_seq=1822&category_id=7

2011/10/17 13:37 2011/10/17 13:37
영주 땅에 팔영산이 있다.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하다.

저ㅡ 우뚝 솟은 하늘을 찌를 듯한 위용의 팔봉!

일찍이 위왕 시대에 중국 위왕이 세수하려던 관수(세수 대)에 여덟 가지 산봉우리 그림자가 비치었다. 신기하게 생각한 위왕은 신하들을 불러 천하 제후들에게 명하여 팔봉의 산이 어느 곳에 있는가를 찾아 아뢰도록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땅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뒤늦게 동방의 나라 조선국 최남단에 있는 점암면 성기리와 동쪽 금사리를 에워싸고 중앙 상부에 돌출한 팔봉의 운치를 자랑한 영산 팔영산을 발견했다는 고사가 구전되고 있다.

원래는 팔전산이라 이름 하였는데 위왕의 관수에 팔봉이 비치었다 하여 그때부터 그림자 영자를 붙여 팔영산으로 불리게 됐다. 동쪽에는 유영봉, 군선봉, 중앙에는 성주봉, 북쪽에는 천주봉, 중앙에 사자봉, 서쪽에는 별봉과 팔응장군이 백마를 채찍질하여 하늘을 날았다는 팔응봉이 있으며, 남쪽에는 일출봉등이 있는데 왜놈이 침입하여 조선을 정복하려면 팔봉에다 큰 대못을 박아야 민족의 정기가 끊어진다하여 칠봉까지 못을 박고, 팔영봉에는 대 못을 박지 못하여 팔응장군이 나왔다는 전설도 있다.

또 남서쪽의 산등성이를 내리 닥치면 평평한 산기슭에 능가사가 자리 잡고 있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의 나라에 있는 명산을 능가사라고 불렀는데, 이를 한자를 붙여 능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능가사의 정문에 들어서면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의 거장이 조각했다는 사천왕의 목각이 웅대하게 안치되어 있으며, 약 1500여 년 전 아도화상이란 중이 창건했다는 절인데 이때에 팔영산 중복에 자리 잡아 그 이름을 보현사라 하였다. 그 후 정현대사가 약 10년 동안에 20여개의 전당을 중건하고 능가사라 했다.

멀리서 구름 사이로 뚜렷하게 용출하는 팔봉은 마치 뭉게구름을 타고 우리 향인들을 언제나 반겨 맞아주고 있다. 너를 보려 내가 왔다. 기쁨에 넘쳐 손을 들면 그 또한 나도 기다렸노라하고 주춤 주춤 걸어 나와 맞이한 듯 하다.

또 이산의 모습은 기묘하여 팔봉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마치 천주 공을 잡음과 같고 군선이 구름을 능가함과 같아 엄연한 불가범의 상이다. 또 동쪽 유영봉에는 서불암이 있었고 우리 고장의 기절 처로서 이 층암절벽 맨 위엔 용 알이 9개가 들어 있어 이 곳에서 구룡정의 샘물이 솟아 이 물을 마시고 백년수 스님이 살았다는 전설도 깃들어 있다. 이 곳에서 남해안을 바라보면 탄환과 같은 작은 섬들이 성라기포처럼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 선인들은 이를 가리켜 보석해라 불렀고, 또 한계가 무궁하여 맑은 날씨에는 일출의 광경을 볼 수 있으며, 바다 멀리 제주도 한라산도 바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춘추 양분에는 노인성이 보이므로 각처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이 빈번하여 이와 같은 기묘절경의 명승을 보지 못한 사람은 마치 화인(중국인)이 금강산의 일경을 원함과 같다고 하는 명산이다. 이산 동북쪽 깊숙이 이 고장 고흥지명의 창시자 류청신의 효심을 상징하는 피난굴이 있어 유명하다. 이 봉 저 봉 젖줄기에는 정기가 넘쳐흘러 우리 고장의 동맥이요, 사방으로 깔려있는 층암절벽의 핏줄기는 의지와 기상이 용솟음치는 고장의 심장이니 과연 팔영산은 우리 고장의 맥이 이어져 오고 있는 역사의 향기를 간직한 선비의 고장으로써 유유히 흐르는 전통을 상징하고 있다.

고흥의 영산이요 명산 팔영산을 해방 후 어느 재벌의 사업 조성을 위해산림을 훼손하고 형질까지 손상시키는 행위 등이 자행되고 오늘날 도립공원으로 인가되어 관광지로 개발되고 팔봉을 중심으로 산의 전체가 4통 5달로 도로가 개설 되었으니 자연의 훼손이 말할 수 없이 많았으나 한편 관광지로 개발되어 군비수입에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는 셈이다. 고흥지방의 산세를 모아 지맥을 이루고 있는 팔영산 8봉 중 제4종인 사자봉은 용이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형상의 기백으로 그 혈명은 신선이 구름 속에 안자 있다는 운중선좌의 형국이다. 이 자리는 대혈이지만 임금의 옥쇄에 해당하는 마지막 봉우리가 완성되지 않아 아쉬운 곳이다.

그러나 이 혈의 가치는 바닷가 부근에서 제일의 산세로서 자손대대로 재물이 모이며 명현 인물이 배출되는 명산이다. 더불어 왕주두에 있다는 지주결망형은 거미가 줄을 치고 기다리고 있다는 특수한 형국으로 해변에서 보기 드문 대혈이지만 정확한 지점이 밝혀지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천혜의 명당들을 두루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흥은 각종 전설과 설화 등에서 전해오거나 또는 풍수지리론을 연구하는 지사(지관)들에 의하여 천하지대팔이발굴될 것으로 본다. 바위마다 사연이 많다는 점안면을 돌아보고 과연 팔영산은 전설이 담긴 명산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출처 : http://www.koreatemple.net/korea_temple/traditional_temple/story/view.asp?temple_seq=1822&category_id=10

2011/10/17 13:36 2011/10/1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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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핑중. 아버님이 신문에 나온걸 확인할수 있었다. => [ 김광준 이장님도 칭찬하셨지만 ]

축하 드립니다.

http://jnnews.co.kr/news/service/article/mess_01.asp?P_Index=59350&flag=
2011/10/09 12:03 2011/10/09 12:03

박지성 폭풍드리블 멋있다! 박지성(3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멋진 드리블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장미 전쟁이라고 불리는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잉글리쉬 리그 컵(칼링컵) 3라운드에서 2어시스트를 한 것을 비롯 전반 43분에는 중앙선에서 부터 메시를 연상하게끔 하는 드리블로 4~5명의 상대 선수를 재쳤습니다. 아쉽게도 골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쾌조의 컨디션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2011/09/09 02:47 2011/09/09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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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5 02:58 2011/09/05 02:58
재미난 글...
  1. 딱 떨어지는 숫자는 2진수입니다.
  2. 한 손으로 31까지 셀 수 있음
  3. 만능이 아님
  4. "컴퓨터"를 잘 하는게 아님
  5. 프로그래머라고 Office 시리즈에 정통한 것이 아님
  6. 아, 그 작업은 사무쪽 누님이 잘하실 겁니다.
  7. 가나 입력으로 변환한 다음에는 반드시 로마자 입력으로 돌려놓을 것
  8. 프로그램의 쓰레기 수집은 잘 하지만 자기 방의 쓰레기 수집은 잘 못함
  9. 멀티스레드 처리 작성은 할 수 있지만 멀티스레드 처리는 못함
  10. Amazon 에서 사는 건 기술서이므로, 딱히 포장물 내용을 확인할 필요는 없음
  11. 쌓아놓은 책은 스택이므로 순번을 바꾸지 말것
  12. 오라일리 책은 「같은 책」이 아님
  13. 표지에 동물만 그려져 있는 책만 꽂혀있어도 그건 동물도감이 아님
  14. 프로그래밍을 안하는 날도 있음
  15. 프로그래밍 언어나 에디터에 대한 집착이 사라진다면 깨달음을 얻었거나 완전연소했거나 둘 중 하나
  16. 언어로 바람피우는 것과 인생의 바람피우기는 다른 것
  17. 「자식을 죽인다」는 말에 놀라지 말 것
  18. 일 관계로 전화를 할 때, 자식이 죽지 않으면 부모를 죽여버리라는 대화를 들어도 놀라지 말것
  19. 라이브러리라는 것은 도서관을 말하는 게 아님
  20. 「사이드 이펙트(부작용)」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아님
  21. 특히 「다이아몬드 상속」은 유산상속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님
  22. 괜히 보석 이름 같은 것을 중얼거려도 보석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아님
  23. 루비와 펄 중에 뭐가 좋아? 라고 물어보면, 싱긋 웃으면서 펄이라고 대답할 것
  24. 「조금만 더하면」「거의 끝났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당분간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
  25. 갑자기 혼잣말을 하기 시작해도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 아님
  26. PC 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말을 걸어도 되는 타이밍인지 아닌지 외견으로 판단하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좋음
  27. 23-24시 정도가 가장 활발함
  28. HP 는 항상 0에 수렴함
  29. 회사와 집의 구별이 그다지 없고, PC 앞에 있는가 없는가의 구별 밖에 없음
  30. 스스로가 정보수집과 오락의 경계선을 이해하지 못함
  31. 몬스터헌터는 업무
  32. 애니메이션 보는 것은 업무
  33.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터넷을 하는 것 뿐임
  34. 주말에도 스터디에 간다고 하는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증거, 가사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님
  35. 한밤에 긴급전화가 왔다면, 다음날부터의 예정은 캔슬이라고 생각합시다
  36. 밤중에 갑자기 사라져도 그냥 장애 대응하러 간 것임
  37. 오전중에 돌아오는 일이 많아져도 바람피우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말것
  38. 주말에만 사복으로 「출근」했다고 바람피우는 것이라고 의심하지 말 것
  39. 결혼식장에서 신랑이 사라져도 당황하지 말것. 고객이 호출한 것 뿐임
  40. 정시퇴근은 도시전설
  41. 「귀가한다」「귀가할 수 있다」라는 말은 별 도움이 안됨
  42. 10일 정도 돌아오지 않아도 당황하지 말 것
  43. 감금같은 걸 당해도 빚이 있어서 그러거나 한 게 아님
  44. 가끔씩 일찍 돌아와도 잘렸을 걱정은 하지 말 것
  45. 여름 휴가 언제야? 라고 묻지 말 것
  46. Twitter 의 post 빈도 감소나 내용에서 상대가 얼마나 바쁜지 추측해서 위로할 것
  47. 화재나 행진같은 것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을 것
  48. 남편 급여의 직능급과 기본급과 잔업수당의 비율
  49. 노동기준법
  50. OA 기기라고 적힌 우편물은 절대로 OA 기기가 아님
  51. PC 나 휴대폰, iphone 에 패스워드 락이 걸려있는 것은 보안대책을 위해서. 바람을 핀다거나 야한 것을 숨기고 있는게 아니랍니다( ^ω^)
  52. 컴퓨터는 이미 집에 있잖아, 라고 하지 마시길. 당신이 갖고 있는 구두나 가방과 같은 것입니다.
  53. 한밤중에 컴퓨터로 동영상을 보면서 싱글거리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Apple 의 신제품 발표이므로 신용카드를 몰수하는 것이 좋음
  54.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이 있는 다음날 아침에 갑자기 개최되는 가족회의에서 제출하는 안건에 대하여 「다른 집은 다른 집이고 우리 집은 우리 집이야!」라고 기각할 것
  55. 뭐가 뭔지 알수 없는 T 셔츠를 남편이 계속 가져와도 적당히 버리거나 하지 말 것
  56. 컴퓨터 책상에 놓여있는 피겨나 프라모델은 버리지 말 것
  57. 그것은 잡동사니도 부서진 물건도 아님
  58. 키넥트를 사려고 하는 것은 유저 인터페이스 연구 때문에
  59. 러브 플러스를 하는 것은 유저 인터페이스 연구 때문에
  60. 사용자 경험(UX)인지 뭔지 하는 주제에 CUI 를 좋아함
  61. LCD 가 달려있는 작고 비슷하게 생긴 기계를 잔뜩 갖고 있어도 전부 다른 물건이며 각자 의미가 있습니다
  62. 동작검증을 하기 위해서는 신제품이 필요하며, 그것은 Amazon 에서 배달됨
  63. 옥션 사용방법을 숙지하고, 남편이 사온 장난감을 팔아치워 용돈으로 씁시다
  64. 생일 선물은 원하는 물건을 미리 말해두지 않으면 신제품 디지털 가전(Gadjet)을 받게 됨
  65. 깜짝 선물을 준비하고 싶다면 남편의 Amazon 위시 리스트를 조사함
  66. iPhone 앱, Android 앱, Web 사이트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뭐가 뭔지 몰라도 상냥하게 대답해줄 것
  67. 쓸데없이 하이텐션으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일 때에는 단순히 흥미 깊은 기술이 나와서 텐션이 높아진 것 뿐이므로, "잘 모르겠지만, 대단하다는 건 알겠다"라고 대답해주세요
  68. 갑자기 이상한 어휘가 늘었다면 니코니코 동화같은 데애서 유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측하시길
  69. 남편의 HN 과 본명을 이어보려고 해서는 안됨
    남편의 블로그의 과거로그를 음독해서는 안됨
    남편의 HN 으로 검색해서 흑역사를 알아서는 안됨
  70. 「우리 마누라가…」라고 했을 때, 그것은 프로그래머 사이에서 통용되는 전문용어입니다. 당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71. 오타쿠라고 하면 필요 이상으로 싫어하지만, 긱(Geek)이라고 말하면 기뻐합니다
  72. 침울해하고 있을 때는 「컴퓨터를 조작해서 ○○할 때 마우스를 쓰지 않고 키보드만으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해?」라고 물으면 기뻐하면서 가르쳐 줄 것입니다
  73. 「시뮬레이션」이라고 말하면 혼나므로 주의할 것
  74. 이상, 이하, 미만, 보다 위, 보다 아래를 대충 섞어쓰면 기분이 나빠짐
  75. 프로그래머는 「절대로」「뭔가 이상해졌어」「아무것도 안했어」같은 말에 과잉으로 반응합니다. 홧병, 쇼크사, 자살의 위험성이 있으므로 이런 말을 사용할 때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76. 부부싸움할 때 최대의 무기는 화이트 보드
  77. 어쩌다 아내의 방식에 불만을 표시하면 「그건 사양(仕様)이예요」라고 대답함
  78. 남편이 이건 사양이라고 말하면 그 사양은 변경되었습니다 라고 대답할 것
  79. 싸워서 꼭지가 돌아버렸을 때에는, 네트워크 회선을 끊어버리는 것이 가장 손쉽고 효과적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80. 가능하면 아내와의 대화를 자동화시키고 싶어 함
  81. 아내에게는 사양 변경이 붙는 법
  82. 홈 서버를 가리키면서 쓰지도 않는데 왜 항상 전원이 켜져 있는 거야 라고 묻지 말 것
  83. 연락수단은 전화<<<<<(넘을 수 없는 벽)<<<<메일<<<<<<<IRC, Skype, etc
  84. Google Calender 에서 상대의 스터디 스케쥴을 파악할 것
  85. 집안 예정은 남편이 지정한 그룹웨어로 공유할 것. 구두(口頭)로의 통지만으로는 위험
  86. 남편이 해야할 것은 데스마치(죽음의 행진)이 아닌 여유가 있을 때 기억시켜두지 않으면 답이 없음
  87. 가정 내의 중요한 스케쥴을 끼워넣고 싶을 때에는 마감 근처의 주말은 피합시다. 어차피 집에 못 돌아옵니다
  88. 남편이 전문분야인 화제에는 신중하게 접근할 것
  89. 친구 관계의 잡담을 할 때에는 상관관계도를 그려주면 이해가 빨라집니다
  90. 단순히 이야기를 들어주기 바랄 때에서는 그렇게 명시할 것
  91. 동의해주기 바랄 때에 분석되어 정론을 들어도 화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92. 요건은 항목별로 적어서 전하지 않으면 프로그래머 스스로가 버그를 냄
  93. 밤생활이 불만이면 Redbull 을 내밀어봄
  94. 정기적으로 자식들에게 이게 아빠야 하면서 사진을 보여주세요
  95. 남편이 「프로그래머의 아내가 알아야 할 97가지」같은 걸 트윗해도 신경쓰지 말 것
  96. 읽어보라고 한 97가지의 절반 이상이 뭔 소리인지 몰라도 어쩔 수 없음
  97.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내를 사랑함. 하지만「쪽팔려서 말 못해」라고 생각해서 말로 표현하지 않을뿐.
원문은 여기
2011/05/22 08:16 2011/05/22 08:16

사람찾기방법 - 이름으로 사람찾기, 전화번호로 사람찾기, 친구찾기

사람찾기방법은 해결사만 하는것이 아닙니다. 온라인에서는 사람을 찾는 여러사이트들이 있습니다. 과거 아이러브스쿨이 유행했었던 적이 있는데 동창찾기를 포함한 사람찾기 사이트들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에서 사람을 찾는 서비스는 상태가 온라인서비스에 가입되어야만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찾기 사이트 - 사람찾기방법
1. 네이트 사람검색
- 싸이월드 db를기반으로 사람이름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싸이월드 이용자가 공개를 하지 않았을 경우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싸이열풍으로 대부분의 사람찾기가 가능했으나 현재는 공개를 하지 않거나 싸이이용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검색결과가 예전만 못한것으로 보입니다.
링크 : http://search.nate.com/search/ps.html?z=PS&s=&tq=&sc=&afc=&thr=tab&q=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네이트 - 사람검색



2. 다음 사람찾기
- 싸이월드, 아이러브스쿨의 유행으로 다음에서도 사람찾기 서비스가 있었으나 현재는 서비스가 종료되어 제공되고 있지 않습니다.


3. 네임검색
- 사람찾기 서비스의 핵심은 결국 사람입니다. 중소규모의 회사에서 아주 특별한 마케팅이나 기술이 없다면 해당 서비스를 진행하기 힘듭니다. 네임검색역시 등록된 사람의 연락처를 알려주는 서비스인데 등록된 db가 많지 않습니다. 링크 : http://www.name.co.kr/
2011/05/01 03:37 2011/05/01 03:37
2011/05/01 01:41 2011/05/01 01:41

식사는 하셨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자주 건네는 인사말 중 하나이지요.
'밥은 먹고 다니냐?'는
어르신들의 물음 속에 담긴
넉넉한 애정이 새삼
떠오르곤 합니다.
무심하게 건네는 말 같지만,
사실은 진심과 관심이
있어야 건넬 수 있는 인사겠지요.

모쪼록 끼니 잘 챙기시며,
늘 편안한 날 되십시오!

2011/03/04 16:57 2011/03/04 16:57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대내외적인 영향보다도 우리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기가막히고 안타까운 마음에 시시각각 전해지는 뉴스를 살피며 수없이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 원숭이와 금기

생태과학자들이 네 마리의 원숭이를 우리에 넣고 실험을 했다.

그들은 매일 먹이를 조금씩 주어 먼저 원숭이들을 배고프게 만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위쪽의 작은 구멍으로 탐스러운 바나나 한 송이를 매달아 내려 보냈다.

굶주림에 눈이 먼 원숭이 한 마리가 재빠른 걸음으로 단숨에 바나나를 잡으러 다가갔다.

그러나 바나나를 막 잡으려고 하는 순간 미리 설치되어 있던 설비에서 뜨거운 물이 뿜어져 나와 그 원숭이는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뒤이어 바나나를 잡으러 갔던 다른 원숭이 세 마리도 모두 차례대로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었다.

원숭이들은 도리 없이 바나나를 바라보며 그저 한숨만 지을 뿐이었다.

며칠 후 우리 속의 원숭이 한 마리를 새로운 놈으로 교체했다.

이 새로운 원숭이가 배가 고파 바나나를 잡으려고 하자 나머지 세 마리는 즉각 그에게 위험을 알리며 절대 바나나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며칠 후 과학자들은 다시 원숭이 한 마리를 교체했다.

이 새로운 원숭이가 바나나를 잡으려고 할 때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포착되었다.

이미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은 경험이 있는 두 마리뿐만 아니라 먼저 교체되어 들어갔던 한 마리마저 적극적으로 새 원숭이에게 바나나에 가까이 가지 말도록 말렸던 것이다.

실험이 계속되어 우리 속의 원숭이들이 모두 새로운 녀석들로 교체되었다.

이제 이들 중 화상을 입었던 원숭이는 한 마리도 없고, 뜨거운 물을 뿜어내는 설비도 제거되어 바나나를 쉽게 잡을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바나나를 잡으러 가는 원숭이는 없었다.

- 경영비책 중에서 ..............


기업조직에는 실패의 경험이 금기처럼 전승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세월이 흐르고 환경과 사람이 바뀌어도, 지난날의 패배에서 생겨난 금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조직을 억눌러 포착해야 할 절대 절명의 기회들을 무기력하게 흘려보내고 마는 것이다.
2010/11/25 01:35 2010/11/25 01:35

- 솔개의 갱생 -

경영 일기 2010/11/25 01:29
2010년이 쉽게 가지 않으려는 듯 연말에 다가가면서 예기치 못한 커다란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한미 연합훈련이 북한의 추가도발 없이 무사히 끝났지만, 지난 29일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사상 두 번째로 큰 피해를 기록하며 확산되고 있어 어려운 시기에 안타까움이 큽니다.




- 솔개의 갱생

솔개는 가장 장수하는 조류로 알려져 있다.

솔개는 최고 약 70세의 수명을 누릴 수 있는데 그가 이렇게 장수하려면 약 40살이 되었을 때 매우 고통스럽고 중요한 결심을 해야만 한다.

솔개는 약 40살이 되면 발톱이 노화하여 이제 사냥감을 그다지 효과적으로 잡아챌 수 없게 된다.

부리도 길게 자라고 구부러져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되고, 또한 깃털이 짙고 두텁게 자라 날개가 매우 무겁게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기가 나날이 힘들게 된다.

이 즈음이 되면 솔개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약 반년에 걸친 매우 고통스런 갱생의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다.

갱생의 길을 선택한 솔개는 먼저 산 정상 부근으로 높이 날아올라 그곳에 둥지를 짓고 머물며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만든다.

그러면 서서히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는 것이다. 그런 후 새로 돋은 부리로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그리고 새로 발톱이 돋아나면 이번에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이리하여 약 반년이 지나면 새 깃털이 돋아난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되는 것이다.

- 경영배책 중에서 ......


-

변화와 개혁을 위해서는 때로 묵은 습관과 전통을 포기할 필요도 있다.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 가운데 새로운 미래가 비로소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2010/11/25 01:29 2010/11/25 01:29

**♣자신을 들여다보는 삶♣**
 "자신을 알려거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유심히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거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까닭입니다.
 
좋은 것은 좋은 대로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그것이 왜

나쁜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으로 자신에게 유익함을 주게 됩니다.
 
먼지가 없는 깨끗한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환하게 보여주지만
 
먼지가 가득 낀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희뿌옇게 보여주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신 또한 상대방의 거울인 까닭에 경거망동을 삼가고 바른 몸과 마음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자신을 살피고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보다 더 아름답고 평안한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살피고 들여다보는 것으로 해서 자신의 옳고 그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쳐서 바로 잡아야 하고
 
어긋난 것이 있으면 제 위치로 돌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반듯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 이렇듯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니까 상반된 논리와 주장에 부딪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야 모두가 받아 드리지 않을까요?
좀더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것은 나로부터 시작이 돼야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매일 너부터 시작하라고 하기 때문에 시끄러운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평안함과 좋은 날들이 되세요.

2010/10/01 01:22 2010/10/01 01:2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전에 알게된 지식인데, 자판기에 2000원을 넣고 반환 레버를 돌리면 1000원짜리 하나, 500원짜리 하나 100원짜리 5개가 나온다는 것이다.
한번 시험 해봤더니 어느 자판기에서나 매우 잘 동작해서, 동전이 필요 할 때마다 요긴하게 잘 써먹고 있다.
오늘도 그 방법을 써먹으려다가 문득 왜 이렇게 친절하게 동전을 교환해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마지막 천원짜리 한장만 반환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3000원을 넣고서 반환 레버를 돌려봤다.
이런 젠장.
1000원 짜리 한개. 500원 짜리 한개. 100원 짜리 10개. 50원짜리 10개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내 저금통에 50원 짜리가 잔뜩 자리 잡아버렸다.
4000원을 넣으면 어떻게되냐고?
10원짜리가 잔뜩 튀져 나올까봐 해보기가 무섭다.
한번씩들 해보시죠.
2010/09/24 01:06 2010/09/24 01:06

대우 중공업 김규환 명장



-강연 요약-



*저는 국민학교도 다녀보지 못했고 5대 독자 외아들에


일가 친척하나 없이 15살에 소년 가장이 되었습니다.


*기술 하나 없이 25년 전 대우 중공업에 사환으로 들어가


마당 쓸고 물 나르며 회사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제가 훈장 2개, 대통령 표창 4번, 발명특허 대상,


장영실 상을 5번이나 받았고 1992년


초정밀 가공분야 명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제가 우리 나라에서 상을 제일 많이 받고


명장이 되었는지 말씀 드릴까요?


사환에서 명장이 되기까지


부지런한 사람은 절대 굶지 않는다


*제가 대우에 입사해서 현재까지 오는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대우에 입사할 때 입사자격이 고졸이상 군필자였습니다.


이력서를 제출하려는데 경비원이 막아 실갱이 하다가


당시 사장이 우연히 이 광경을 보고 면접을 볼 수 있게 해줬습니다.



*그러나 면접에서 떨어지고 사환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사환으로 입사하여 매일 아침 5시에 출근하였습니다.



하루는 당시 사장님이 왜 일찍 오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선배들 위해 미리 나와 기계 워밍업을 한다고 대답했더니


다음날 반장으로 승진시켜 주시더군요.


*2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5시에 출근하였고,


또 사장님이 질문하시기에 똑같이 대답했더니


다음 날 반장으로 승진을 시켜 주시더군요.


내가 만든 제품에 혼을 싣지 않고 품질을 얘기하지 마십시오


*제가 어떻게 정밀기계 분야의 세계 최고가 됐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가공 시 1`C 변할 때 쇠가 얼마나 변하는지 아는 사람은


저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걸 모를 경우 일을 모릅니다.


*제가 이것을 알려고 국내 모든 자료실을 찾아봤지만


아무런 자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장 바닥에 모포 깔고 2년 6개월 간 연굴르 했습니다.


*그래서 재질, 모형, 종류, 기종별로 X-bar 값을 구해


1`C 변할 때 얼마 변하는지 온도수가공표를 만들었습니다.


*기술공유를 위해 이를 산업인력관리공단의


`기술시대`란 책에 기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3명의 공무원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에 회사에서는 큰일이 일어난 줄 알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출한 자료가 기계가공의


대 혁명 자료인 걸 알고 논문집에 실을 경우 일본에서 알게 될까 봐


노동부 장관이 직접 모셔오라고 했다는 겁니다.


장관 曰 " 이것은 일본도 모르는 것이오. 발간되면


일본에서 가지고 갈지 모르는 엄청난 것입니다."



목숨 걸고 노력하면 안되는 일 없다


*일은 어떻게 배웠냐? 어느 날 무서운 선배 한 분이


하이타일 기계를 다 닦으라고 시키더라구요. 그래서 다 뜯고 닦았습니다.


모든 기계를 다 뜯고 하이타이로 닦았습니다.


기계 2612개를 다 뜯었습니다.


*6개월 지나니까 호칭이 "야 이새끼야"에서 "김군"으로 바뀌었습니다.


서로 기계 좀 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실력이 좋아 대접 받고 함부로 하지 못하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 난생 처음 보는 컴퓨터도 뜯고 물로 닦았습니다.


사고 친 거죠.


그래서 그 때 알기 위해서는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 가훈은 "목숨 걸고 노력하면 안되는 일 없다"입니다.


*저는 국가기술자격 학과에서 9번 낙방, 1급 국가기술 자격에 6번 낙방,


2종 보통운전 5번 낙방하고 창피해 1종으로 전환하여 5번만에 합격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새대가리라고 비웃기도 했지요.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1급자격증 최다보유자가 접니다.


새대가리라고 얘기 듣던 제가 이렇게 된 비결을 아십니까?


그것은 목숨걸고 노력하면 안되는 것 없다는 저의 생활신조때문입니다.


*저는 현재 5개국어를 합니다.


저는 학원에 다녀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외국어를 배운 방법을 말씀 드릴까요?


저는 과욕없이 천천히 하루에 1문장식 외웠습니다.


하루에 1문장 외우기 위해 집 천장, 벽, 식탁, 화장실문,


사무실 책상 가는 곳마다 붙이고 봤습니다.


이렇게 하루에 1문장식 1년, 2년, 꾸준히 하니


나중엔 회사에 외국인들 올 때 설명도 할 수 있게 되더라구요.


*진급, 돈 버는 것은 자기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을 불평하기 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요.


그러면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배 아파하지 말고 노력하십시오.


의사, 박사, 변호사 다 노력했습니다. 남 모르게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하루종일 쳐다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해답이 나옵니다




*저는 제안 2만4천6백12건, 국제 발명특허 62개를 받았습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건 무엇이라도 개선합니다.


하루 종일 쳐다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해답이 나옵니다.


가공기계 개선을 위해 3달 동인 고민하다


꿈에서 해답을 얻어 해결하기도 했지요.


*제가 얼마전에는 새로운 자동차 윈도 브러시도 발명했습니다.


유수의 자동차 회사에서도 이런 거 발명 못했습니다.


*제가 발명하게 된 배경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회사에서 상품으로 받은 자동차가 윈도 브러시 작동으로 사고가 났습니다.


교통사고 후 자나 깨나 개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물을 가르는 것 보고 생각해 냈습니다.


대우 자동차 김태구 사장에게 말씀 드렸더니


1개당 100원씩 로열티를 주겠다고 하더라구요.


약속하고 오는 길에 고속도로와 길가의 차를 보니 모두 돈으로 보입디다.


*돈은 천지에 있습니다. 마음만 있으면 돈은 들어옵니다.




회사에 대한 나의 생각




저의 종교는 대우중공업교입니다




*저는 여러분들한테 반드시 종교를 가지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종교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회나 절에 다니지 않습니다.


제 종교는 대우중공업교입니다.


우리집에는 대우 깃발이 있고 식구들 모두 아침 밥 먹고


그 깃발에 서서 기도합니다


*저는 하루에 두 번 기도합니다.


아침에 기도하고 정문 앞에서 또 한 번 기도합니다.


"나사못 하나를 만들어도 최소한 일본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는 얼마전 대표이사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 애 대학 학자금 지원이 고마워 ㅐ표에게 감사편지를 썼습니다.


제가 편지를 썼더니 대표가 이상하게 생각하십디다.


혹시 명장이 뭘 더 바라는 게 있어서 그런 줄 알고요.


제가 왜 감사의 편지를 썼는지 궁금하시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의 회사 여직원 받는 월급이 1년에 쌀 100가마 살 돈을 받습니다.


어디서 이런 수입을 얻겠습니까? 농부의 힘든 생활을 생각해 보십시오.


게다가 학자금까지 , 이런 마음 있으면 회사 업고 다닙니다.


*여러분 삼성 다니면서 삼성제품 써야 합니다


회사를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왜 했습니까? 삼성에서 일하기 위해서 아님니까?


지금 공부하실 때처럼 일하셨습니까?


생명을 바치고 내가 대표선수로 일본,


독일, 미국과 경연대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요.




마지막 당부의 말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는 영화를 얻는다




*저는 심청가를 1000번 이상 득고 완창을 하게 되었습니다.


심청가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한번 맊에 없는 인생 돈의 노예가 되지 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의 인생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는 영화를 얻는다."


*힘들고 어려운 길은 반드시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부처님께 공양하는 마음으로 하십시오.


*목숨 걸고 모력하면 안되는 것 없습니다. 목숨 거십시오.


내가 하는 분야에서 아무도 다가 올 수 없을 정도로 정상에 오르면


돈이 문제가 아님니다. 내가 정상에 가면 길가에 핀 꽃도 다 돈입니다.






####### ##### %%%%% !!!!!! $$$$$$




링크나우 회원님들 이세상에는 나보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며 역경을 딛고 새롭게 정상에 선 사람들이 참 많이 있담니다


우리모두 다 같이 화이팅을 외치며 최선을 다한 생활을 해 나아갑시다.


대한민국 부자만들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여 나아갑시다.


인연의 소중함으로 열정 긍정의 힘으로


자신을 명품으로 만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 하루하루 삶을 영위해 나아갑시다.



귀한 부자로 베푸는 부자로 성공하리라 스스로에게 굳게 다짐하여봄니다.



2010/09/20 22:22 2010/09/20 22:22
정정기 대표님 상장을 축하드립니다.

모바일리더는 2000 년 설립 이후 모바일 분야 쪽에 선두주자로 자리 매김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정기 대표님을 존경 하는 부분도 있고 . 닮아 가고 싶은 사람중 한분 입니다.

계속 해서 사업 번장 하시고 . 파이팅 입니다.!!
==================================관련 기사 ======================================

PLAY
 
<앵커1> 상장을 축하드립니다. 모바일리더의 간단한 회사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저희 모바일리더는 2000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만 10년을 맞게 된 모바일 솔루션 전문회사입니다.
저희는 그동안 동기화(싱크) 및 멀티미디어 분야에 집중적인 연구 개발을 통해 확보된 자체 솔루션을 바탕으로 휴대폰 제조사 및 이동통신사에 동기화 소프트웨어를 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동영상 보고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215&aid=0000015918
2010/08/30 00:24 2010/08/30 00:24

[보안뉴스 길민권] 인터넷 비즈니스 솔루션 전문업체 (주)오픈코리아 (대표 김영삼)가  1기 인턴사원 을 모집한다고 15일 밝혔다.


모집부문은 프로그램 개발, 시스템 엔지니어, 웹 디자이너, 웹기획·서비스기획·마케팅, 재무회계 등 총 5개 분야로 4년제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2010년 2월 기졸업자 및 8월 졸업 예정자면 지원이 가능하다.


지원자들은 오는 9월20일까지 (주)오픈코리아 인턴 채용 페이지(www.openkr.com/)를 통해 지원하면 된다.


전형은 1차 서류심사와 인적성검사, 2차 면접으로 구성되며 1차 서류전형 합격자는 오는 22일 홈페이지 게시 및 개별 통보를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선발된 인턴사원은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각 직무별 실무자와 1:1 멘토링을 통해 해당 실무를 경험하게 된다. 또 팀 별로 주어지는 프로젝트도 참여할 수 있다.


특히 오픈코리아는 인턴십 기간 중 다양한 평가를 통해 업무에 적합한 인재라고 판단되면 프로그램 종료 후 바로 취업할 수 있는 특전을 제공할 예정이다.


(주)오픈코리아 이일규 이사는 "인턴십은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입사 지원 시 혜택도 부여되는 장점이 있어 취업 준비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번 (주)오픈코리아 인턴 프로그램이 취업 준비생들에게 성공적인 사회로의 첫발을 내딛는데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길민권 기자(reporte21@boannews.com)]

2010/08/16 16:16 2010/08/16 16:16
당신을 좋게 말하지 말라.
그러면 당신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또 당신을 나쁘게 말하지 말라.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말한 그대로 취급받을 것이다.

-루소-
2010/08/08 17:58 2010/08/08 17:58
모든 성공의 방법은 실천입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당장 실천해야 하며 실천하는 목표를 마인드스토밍을 통하여 만들수 있다.

마인드스토밍이란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만들어 낸것으로

자기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실천방안을 종이에 적은 이후에 하나하나 바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

이영상은 46분 짜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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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4 12:43 2010/08/04 12:43

[최신판]전국낚시터안내 지도 전국각지 자세한설명!  전국낚시터안내 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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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3 17:22 2010/06/0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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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3 08:37 2010/04/13 08:37





 


2010/04/13 06:37 2010/04/13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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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9 00:48 2010/03/29 00:48
출처 :
네이버 - http://new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ws&sm=tab_jum&query=%uC624%uD508%uCF54%uB9AC%uC544%20%uAE40%uC601%uC0BC

다    음 - http://search.daum.net/search?w=news&q=%EC%98%A4%ED%94%88%EC%BD%94%EB%A6%AC%EC%95%84%20%EA%B9%80%EC%98%81%EC%82%BC&enc=utf8&nil_search=btn

'국내 최고' 넘어 세계시장 목표
[향토기업을 찾아서] ⑫ (주)오픈코리아
2010년 03월 15일 (월) 오창균 기자 crack007@suwon.com

지난 2008년 리먼사태로 촉발된 경제침체 이후 좀처럼 국내 경기가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수원지역도 마찬가지다. 기업과 시민이 힘을 합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에 본지는 지역경제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수원의 향토기업’을 응원하기 위해 연속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오늘은 열두 번째 순서로 기술 집중형 IT기업 ‘오픈코리아’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인터넷 홈페이지, 아티보드를 사용하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손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 김영삼 오픈코리아 대표가 아티보드를 설명하고 있다. ⓒ 오창균 기자 crack007@suwon.com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아티보드’. www.webarty.com에 접속해 아티보드 솔루션을 내려 받으면 초보자일지라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한방에 구축할 수 있다.

특히 모든 기능을 포함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인기는 하늘을 높은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무료로 배포한다고 하지만 ▲빠른 속도 ▲강력한 관리자 모듈 ▲지속적 업데이트 ▲다양한 부가기능·스킨 제공 등으로 인해 최강의 웹사이트 구축 솔루션이라는 평가다.

‘행정중심복합도시디자인·세종시’ 홈페이지를 비롯해 ‘광교신도시 공원디자인공모’, ‘국토지리학회’ 등 관공서는 물론이고 대기업 웹사이트까지 아티보드를 이용해 제작된 홈페이지는 무수히 많다.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아티보드의 장점은 다양하지만 최고 장점이라 하면 바로 빠른 실행속도를 꼽을 수 있다. 자체 개발한 ‘웹 해킹 방지 보안시스템’을 탑재했지만, 복잡한 SQL을 단순화 시키고, 적절한 절차를 기본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빠른 성능을 자랑한다. 

아티보드를 개발·공급하고 있는 오픈코리아(대표 김영삼·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549-10 아석빌딩 3층)는 웹사이트와 인터넷 쇼핑몰, 보안솔루션, 커뮤니티 등 온라인상의 모든 솔루션을 기획·개발하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 매출의 60%를 매년 R&D에 투자하는 등 국내 정상을 목표로 질주하고 있다.

김영삼 오픈코리아 대표는 “웹 에이전시, e비즈니스, 네트워크시스템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쌓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유기적인 환경을 설계·구축함으로써 앞으로 어떠한 컨텐츠 개발에 있어서도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 대표의 이력은 참 독특하다. 국내에서 알아주는 해킹 커뮤니티인 해커스쿨을 처음 만든이가 바로 김 대표다. 이 후 실력을 인정받아 삼성SDS에서 근무하던 그는 2년만에 돌연 사직서를 제출하고 오픈코리아를 설립한다.

김 대표는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주위사람 모두가 미쳤다고 퇴사를 만류했지만 나만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다는 꿈을 져버릴 수 없어 과감히 사직서를 던졌다”고 설명했다. 
 
2002년 설립 당시 연 1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빠듯했지만 현재는 연 80억 이상 매출고를 달성하며 불과 6~7년만에 수원 최고의 IT중소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국내 최고의 솔루션을 개발하고, 나아가 세계 시장을 목표로 하는 기업으로 오픈코리아를 성장시키고 싶다”며 포부를 밝히고 “윈도에서 제공하거나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방화벽을 사용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해킹을 할 수 있으니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고 보안 솔루션 전문가로서 당부했다.


출처 : http://new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ws&sm=tab_jum&query=%uC624%uD508%uCF54%uB9AC%uC544%20%uAE40%uC601%uC0BC

2010/03/14 23:55 2010/03/14 23:55
    사진이 영 그러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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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4 13:18 2010/02/24 13:18

고흥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녹동항은 규모는 작지만 고흥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과거 녹동항은 남해연안 어업 전진기지로 수산물이 풍부해 풍요로움을 누렸다. 여기에 더해 녹동항에서 600m 떨어진 '작지만 아름다운 섬' 소록도는 고흥의 대표적 관광지로 일반인의 발길이 이어져 녹동항 주변 상권 활성화를 가져왔다.

녹동항과 지척인 소록도는 섬 전체가 한센병 환자를 위한 병원지역으로 지정돼 과거엔 외부인들의 출입이 통제됐다. 그러나 1988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되면서 아름다운 풍광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관광객은 녹동항을 통해 소록도를 찾게 됐다.

항구 바로 앞에 눈에 잡힐 듯 떠있는 소록도와 사시사철 풍부한 어패류가 생산된 녹동항이 고흥을 대표하는 '금싸라기 땅'이 된 이유다.

어획고가 꾸준히 늘면서 수산물 가공공장을 비롯한 어망 등 어구 판매점, 얼음공장 등 연관업체가 연이어 들어섰다. 소록도 관광객을 겨냥한 음식점, 숙박업소도 호황을 누렸다.

항구 주변 상권이 활기를 띠면서 인구도 꾸준히 늘었다. 녹동항이 포함된 고흥군 도양읍의 인구 수가 군청 등 행정기관이 밀집된 고흥읍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

녹동항은 그러나 여느 항ㆍ포구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 이후 어획량이 급감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곳에서 주로 잡히는 대표 어종은 광어, 우럭, 돔, 낙지, 갯장어 등이었지만 먼 바다의 싹쓸이 조업 및 어선 감척사업 등의 여파로 최고의 활황을 누렸던 때와 비교할 땐 어획고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고흥군 수협 위판액은 2007년 540억원에서 지난해 610억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이는 활어 등의 어획고 증가가 아닌 물김 작황이 좋았기 때문이다.

고흥군 수협 관계자는 "꾸준한 감소세를 보이던 위판액이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가장 큰 원인은 양식 규모가 확대되면서 패류 생산이 늘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어획량이 들쭉날쭉한 고기만 잡아선 생계유지가 힘들다고 판단한 어민들이 양식장에 눈을 돌리면서 소득 창출에 나섰고,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외지인들의 소록도 방문 증가에 따른 관광 수입은 어패류 위판과 함께 녹동항 경제력을 지탱하는 한 축이다. 소록도에는 70세 이상인 주민 620여 명과 의료진 180여 명이 살고 있다. 하지만 소록도에는 관광객이 머물고 쉴 수 있는 시설이 전무한 상태. 녹동항이 소록도의 배후 관광단지 역할을 맡게 된 이유다.

특히 지난 3월 도양읍 녹동항과 소록도를 잇는 총 연장 3460m의 소록대교 개통으로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면서 섬 주민들의 바깥 나들이가 원활해졌고, 관광객이 늘면서 항구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그러나 이같은 외적인 변화가 녹동항 주변 상권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진 않았다. 소록대교 개통으로 자동차를 통한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관광객들이 녹동항에 머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과거 소록도를 왕래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 선박일 때는 선착장 주변 횟집이나 숙박업소를 이용하는 관광객이 많았지만 지금은 소록도만 둘러보고 곧바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녹동항 주변 상인들은 "소록대교가 개통되면서 소록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크게 늘었지만 실제 녹동항 주변 식당이나 술집, 여관 등을 찾는 이는 오히려 줄었다"며 "녹동항 상권 활성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 대표 항구인 녹동항의 침체는 고흥 전체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항구의 경제력이 흔들리면서 군청 소재지인 고흥읍의 상권도 동반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 군청과 경찰서, 터미널 등이 밀집돼 유동인구가 끊이지 않았던 고흥군청 앞 주변 상가들이 영업 부진을 이유로 휴ㆍ폐업을 결정하면서 원도심 공동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고흥군이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행정타운 이전 등의 계획을 마련했지만 재원 마련의 어려움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고흥군은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녹동항 주변 환경디자인 개선 및 야간경관 조성에 나서고 있다. 지역 특성에 맞는 환경디자인과 야간경관 조명으로 녹동항이 첨단 자연, 문화와 전통이 만나는 고품격 미항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이와함께 군은 고흥군 도양읍 일원 91만평(일반 산업단지 64만평, 배후단지 27만평)에 '고흥 조선타운'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중형 조선소 및 연관 기자재 업체 집적화 단지를 조성해 전통적 농어촌 지역인 고흥군이 21세기 선진 도ㆍ농 복합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강력한 성장 동력으로 만든다는 것이 군의 구상이다.

조선타운에는 조선산업 시설뿐만 아니라 교육시설과 주거시설, 병ㆍ의원 등 복지시설, 기타 각종 문화체육시설 등을 갖춘 쾌적한 배후단지가 동시에 조성돼 도양읍을 전남 동ㆍ남부권 조선산업의 신 메카로 자리잡도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시작된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여파로 관련 업체들의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지역민의 기대가 충족될 지는 미지수다.

"과거 24만명에 달했던 고흥 인구가 최근엔 8만명선이 붕괴되는 등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인구 유입과 상권 회복을 통한 지역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지난 19일 고흥읍에서 정순열 고흥군번영회장을 만났다. 정 회장은 최근 목포~광양간 고속도로 구간의 고흥 나들목(IC) 설치를 위한 범군민추진위원회(범추위) 공동대표를 맡아 타당성 용역을 이끌어내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고흥을 지나는 고속도로인데 정작 고흥으로 드나들 나들목이 없다는 건 말도 안된다'는 주민들의 반발과 갈수록 쇠퇴해가는 고흥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고흥 나들목 설치는 필수라는 생각에서 추진한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시행자인 한국도로공사가 고흥 나들목 예정지였던 동강면 한천 부근엔 양쪽 터널 교량이 800m에 불과해 설치가 불가능한데다 고흥지역 진ㆍ출입을 위한 벌교읍 칠동에 벌교 나들목이 설치돼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를 납득할 수 없었던 정 회장 등 범추위는 고흥군을 비롯해 전남도 등에 고흥 나들목 설치를 지속적으로 건의하는 한편 지역 정치인과 중앙부처를 직접 방문해 필요성을 역설했다. 범추위의 끈질긴 노력에 결국 한국도로공사는 고흥 나들목 건설을 위한 타당성 용역을 의뢰했다.

정 회장은 "고흥 발전을 위해 모든 주민들이 합심해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이라며 애써 겸손해했지만 그의 남다른 노력은 지역 내에 널리 퍼져있는 느낌이다.

고흥군번영회장으로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고흥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과거 해남과 함께 전남 동ㆍ서부지역을 대표하는 중심지였던 고흥이 쇠락한 원인은 자연적인 인구 감소도 한 원인이겠지만 무엇보다 지역 발전을 위한 노력과 대안 모색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며 "이제라도 고흥읍을 중심으로 한 원도심 활성화를 비롯해 다각적인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이어 "고흥군이 고흥읍에 군 청사 및 대규모 주거단지 등이 들어서는 신시가지를 조성하려는 것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면서 "다만 주민들과 충분한 협의를 통해 기존 청사 활용방안과 기존 상가들의 피해 최소화를 위한 노력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나로우주센터를 중심으로 추진되는 고흥 항공우주클러스터 조성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시했다.

로켓 발사 등에 따른 주변 환경파괴와 소음 피해 등에 대한 정확한 조사없이 우주센터 부지가 선정된데다 지역민에 직접적인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고흥지역 활성화 방안으로는 교육여건 개선 등을 인구 유입을 첫 손에 꼽았다.

그는 "고흥지역은 청ㆍ장년층 인구 유출 및 급속한 고령화, 생산기반 미비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진단한 뒤 "고흥읍을 중심으로 한 기존 시가지 정비와 함께 우수 학교 설립 등 교육기반 구축을 통해 살고 싶은 지역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2009/09/30 19:20 2009/09/30 19:20

<남해안시대>-①`복합규제에 묶인 `블루오션'

연합뉴스 | 입력 2009.09.14 08:10 | 수정 2009.09.14 08:15

 



국립공원.수자원보호구역 중첩..천혜의 자연조건 불구 기반 열악
※편집자 주 = 부산과 경남, 전남을 아우르는 '남해안 시대'가 열리고 있다. 경남도가 남해안권 자치단체간 협력을 통한 상생과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앞장 서 주창한 지 만 5년만이다.

'동ㆍ서ㆍ남해안권발전특별법'으로 법제화된 데 이어 오는 11월이며 남해안발전종합계획안이 확정돼 구체적인 실행을 위한 발판이 마련된다.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기대되고 있는 `남해안 시대'의 주창 배경과 당위성, 향후 전략을 3편에 걸쳐 소개한다.

(창원=연합뉴스) 정학구 기자 = 김대호 경남지사가 5년 전 처음 주창했을 때만 해도 막연한 구호로만 들렸던 '남해안 시대'가 이제 현실화되고 있다.

절경을 자랑하면서도 중첩된 규제에 꽁꽁 묶여 낙후된 남해안이 이제 새로운 미래를 향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김태호 경남지사가 부산-경남-전남을 잇는 남해안 해양경제축 개발을 공식제안한 것은 2004년 11월.

전남과 부산 정치권 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남해안발전특별법'이 발의됐고 우여곡절 끝에 '동ㆍ서ㆍ남해안권발전특별법'이란 확대된 법안의 제정으로 결실을 봤다.

남해안권 발전종합 계획안이 오는 11월께 확정되면 내년부터 개발계획과 실시설계 수립 등을 거쳐 사업이 본격화돼 2020년까지 약 26조4천억원 가량이 투입된다.

◇왜 남해안시대인가 = 김태호 지사는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이자 새로운 시대를 여는 '블루오션'으로 남해안을 꼽았다.

남해안의 아름다운 바다와 섬을 종합적으로 개발해 해양레포츠와 크루즈, 관광, 휴양을 아우르는 '제2의 지중해'로 건설하고 연안지역을 복합경제 중심지로 키우자는 것이다.

여기엔 모든 것이 집중된 수도권에 대응하는 '제2의 성장 축'으로 남해안을 발전시켜야 장기적으로 남해안과 수도권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프랑스가 파리에서 900㎞나 떨어진 지중해 남부 연안에 리조트와 첨단 산업단지, 임해 산업단지 등을 조성해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 집중완화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 김 지사의 말이다.

현재 수도권은 남해안 1만2천519㎢보다 좁은 1만1천776㎢에 남해안(872만8천명)의 2.7배나 되는 2천371만1천명이 몰려 살고 있다.

경제활동 인구 역시 수도권에 49.9%가 집중돼 있는 반면 남해안에는 17.0%가 거주하고 있다.

수도권의 지역내 총생산(GRDP)도 5천373억 달러로 남해안 1천926억 달러의 2.8배나 된다.

수도권이나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남해안을 새로운 성장 축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 남해안, 어떤 곳인가 = 남해안에는 2천460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고 청정해역 곳곳에 양식장이 들어서 있다.

부산에서 목포까지 직선거리는 약 250㎞에 불과하지만 꼬불꼬불한 리아스식 해안선의 총 길이는 약 1만㎞나 된다.

일조량도 가장 많아 연간 총 2천157시간이나 되며 개펄 면적은 2천550㎢로 전국 개펄의 17.3%를 차지한다.

남해안권에는 86개 산업단지가 있고 4천700여개 기업이 입주해 있으나 전체적인 산업별 비중을 보면 여전히 1차 산업이 높다.

특허출원 건수와 등록건수를 보면 남해안은 전국의 4.7%와 3.6%로 수도권의 52.6%와 55.4%에 비교도 되지 않는다.

중국의 동북 3성을 비롯해 일본 긴키, 한국 수도권 등을 포함한 동북아 10대 경제권 속에서 남해안은 인구나 GRDP 측면에서 최하위권을 맴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재생 에너지인 태양광과 수력발전량은 33.5%와 83.5%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등 녹색성장에 적합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잠재적인 관광자원이 엄청난데 비해 기반시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총 2만5천475㎞에 이르는 도로의 포장률은 전국 평균 78.3%에도 못미치고 전남과 경남은 70%를 밑돈다.

남해안 고속도로는 십수년간 상습체증에 시달리고 있고 확장공사가 이제야 진행 중이다.
고성과 통영 등 서부와 중ㆍ동부 경남을 잇는 국도들은 주말과 휴일에 차량행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철도 역시 일제시대 이후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단선(單線)으로 운행돼오다 최근 복선(復線) 전철화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진척도는 더디다.

◇ 남해안과 복합 규제 = 남해안 자치단체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산으로 관광개발에 나서려고 해도 해상국립공원과 수산자원보호구역, 문화재보호구역 등 중복 규제에 묶여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경남 통영ㆍ거제ㆍ사천ㆍ남해ㆍ하동 등은 한려해상국립공원(면적 546㎢)으로, 전남 여수ㆍ고흥ㆍ거문도 등은 다도해국립공원(2천321㎢)으로 각각 묶여 있다.

이 해상국립공원이 남해안에만 존재하는데다 수산자원보호구역도 10곳 가운데 9곳(6천521㎢)이 남해안에 집중돼 있다.

이 때문에 도와 각 시ㆍ군이 추진하려던 각종 개발계획은 번번이 제동이 걸렸다.
남해안이 최적의 장소인 요트산업 클러스터를 통영시 일원에 설치하려고 했지만 수산자원보호구역에 묶여 어려움을 겪었다.

거제 해금강 집단시설지구와 마산 구산해양관광단지, 사천 비토관광지 개발, 하동 선블루리조트, 통영 해전사박물관, 통영 해상케이블카 설치사업 등이 줄줄이 같은 운명을 겪었다.
2009/09/30 19:19 2009/09/30 19:19